Yidu Song

·Reflections·6 min read

동아리 회장을 마치며

AI 학술동아리 회장으로 보낸 10개월의 기록

들어가며

2025년 9월(2학년 2학기)부터 2026년 6월(3학년 1학기)까지 가천대학교 인공지능 학술동아리 A.ing의 회장을 맡았다. 10개월 동안 동아리를 이끌며 느낀 점을 정리해 보려고 이 글을 쓴다.

회장이 되기까지

입대 직전에 ChatGPT와 DALL·E가 나왔다. DALL·E는 얼리 액세스로 직접 써 봤는데 정말 신기했다. 그림을 진짜 못 그리는 나도 글만 쓰면 그럴듯한 그림이 나왔다.

한옥 담장 앞에 선 한복 차림의 여성을 그린 유화풍 그림
그때 DALL·E로 만든 그림

ChatGPT는 군대에서 대학교 학점 인증 강의 과제를 하면서 처음 써 봤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한참 모자란 GPT-3.5였지만, 내가 부족한 부분을 인공지능이 채워 줄 수 있다는 게 짜릿했다. 그때부터 인공지능 분야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전역하고 복학까지 7개월 정도 쉬는 기간이 생겼다. 막상 전역하고 나니 또래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고, 다 까먹은 파이썬부터 ML/DL 기초까지 혼자 붙잡고 공부했다.

그렇게 넉 달쯤 지나자 답답해졌다. 책을 따라가면 이해는 되는데, 막상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지는 못했다. 대학 생활을 하는 또래에 비해 내가 어디가 부족한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동아리에 들어가 사람들과 같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당시 회장, 운영진과도 친해져서 나도 다음 학기부터 운영진을 하기로 했다. 그러다 회장이 4학년 2학기를 앞두고 자리를 넘겨야 할 때가 왔다. 대학교 자율 동아리 회장은 아무 보상 없이 부담만 큰 자리다 보니 다들 맡기 싫어했다. 결국 회장은 개강 3일 전에 두 사람을 지목해 둘 중 한 명이 회장을 맡아 줬으면 좋겠다고 통보하고 떠났는데, 그 둘 중 한 명이 나였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느니 그냥 내가 해 보자 싶었고, 그렇게 얼렁뚱땅 회장이 되었다.

첫 학기

첫 학기는 부원 약 30명과 함께했다. 개강 직전에 회장이 된 탓에 부원을 모집하고 회장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지나갔다.

커리큘럼을 새로 짤 시간은 없었지만, 전 회장이 남겨 준 가이드를 바탕으로 지난 학기보다 트랙을 세분화했다. 초심자인 주니어는 ML과 DL 중 하나를, 시니어는 기초 논문과 개인 논문 중 하나를 골랐다.

  • 주니어 ML: 유튜브 ML 강의를 보고 자체 제작한 퀴즈를 풀었다.
  • 주니어 DL: 부회장이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딥러닝』으로 강의했다.
  • 시니어 기초 논문: 팀별로 각 분야의 기초 논문을 읽었다.
  • 시니어 개인 논문: 각자 관심 있는 논문을 읽고, 한 달에 한 번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다만 부원으로 지낼 때도, 회장으로 한 학기를 보내면서도 느낀 문제가 두 가지 있었다.

첫째, ML 트랙의 퀴즈는 굳이 모여서 같이 풀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학기 중간에 팀별 리그전을 도입해 봤다.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House Prices 같은 대표적인 문제를 풀고, 팀별로 성능을 겨루는 방식이다. 승점을 가장 많이 딴 팀에게는 학기 말에 스타벅스 쿠폰을 줬다. 부원들에게 동아리 활동 중 리그전이 가장 재밌었다는 피드백을 받았고, 출석도 리그전을 하는 날이 가장 좋았다.

A.ing ML Programming 리그전 2라운드 리더보드. 1위 ML 3조(F1 0.8, 6점), 2위 ML 2조(F1 0.78, 3점), 3위 ML 4조(F1 0, 2점)
리그전 2라운드(Wine Quality) 리더보드

둘째, 주니어 부원은 세미나 발표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른 채 멍 때리다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발표자와 주니어의 수준 차이가 컸고, 시니어라도 발표 주제가 자기 관심 분야와 다르면 알아듣기 어려운 일이 허다했다. 게다가 30명 가까이 모인 자리에서 손을 들고 모르는 걸 묻거나 토론하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익명 질문 게시판을 운영하고, 회장인 내가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분위기를 주도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익명 게시판에조차 질문을 올린 건 운영진뿐이었다. 결국 발표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하는 문제였는데, 학기 중에는 운영진도 바빠서 손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학기 말에 설문조사를 했다. 30명(주니어 25명, 시니어 5명)이 응답했다.

가장 눈에 띈 건 구현이었다. "배운 모델을 참고 자료 없이 백지에서 뼈대라도 짤 수 있다"는 문항에 4점 이상을 준 사람은 시니어를 포함해 한 명도 없었다. AI 코드를 가져다 쓴 이유 1위도 "이론은 아는데 코드로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해서"였다. 전역하고 혼자 공부하던 시절 내가 느낀 답답함과 같은 말이었다.

막혔을 때는 26명이 구글링이나 ChatGPT로 혼자 해결했고, 운영진이나 선배에게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한 부원은 자유 응답란에 "동아리가 구조적으로 삭막함"이라고 적었다. 같이 공부하려고 모였지만, 실제로는 각자 혼자 공부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두 번째 학기에는 커리큘럼을 전면 개편하기로 운영진과 마음을 모았다.

두 번째 학기

두 번째 학기 커리큘럼의 핵심 모토는 "의도적인 불편함으로 성장하자"였다.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성장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AI나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줬을 때가 아니라 직접 힘들게 부딪혔을 때였다. 그렇게 배운 건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학습심리학에서 바람직한 어려움이라고 부르는 개념이기도 하다. 부원들도 이런 불편함을 팀별로 극복하며 서로 친해지고, 실력도 늘었으면 했다.

  • 주니어: ResNet과 Transformer 논문을 4주씩, 팀별 개념 학습 → 핵심 로직 구현 → 하이퍼파라미터 튜닝 → 리그전 순서로 공부한다.
  • 시니어: 팀별로 CV, NLP, RL 중 주제를 골라 오픈소스 코드를 재현하고, 자기 데이터에 맞게 고쳐 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커리큘럼 저장소 보기

불편함은 자료 곳곳에 일부러 심었다. 빈칸 노트북은 핵심 로직을 비워 두고 직접 채우게 했고, 막힐 때 보라고 만든 쿡북에는 정답 코드 없이 PyTorch 사용법만 넣었다. 대신 혼자 헤매지 않도록, 모든 자료에 논문의 어느 부분과 연결되는지 표시해 뒀다. 리그전은 첫 학기에 가장 반응이 좋았던 만큼 그대로 살렸다.

시니어는 듣기만 하던 세미나 대신 직접 해 보는 프로젝트로 바꿨다. 완성도보다는 재현하고 고치는 과정을 기록하는 데 무게를 뒀다.

효과는 학기 초·중간·말 세 번의 설문으로 확인했다. 학기 초와 말에 모두 응답한 15명의 역량 자기평가는 5점 만점에 2.55점에서 3.45점으로 올랐고, 15명 중 13명이 상승했다. 자기평가라 전부 커리큘럼 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숫자보다 눈에 띈 건 따로 있었다. 중간 설문에서 가장 어렵다고 꼽힌 건 논문 읽기와 빈칸 채우기였는데, 학기 말에 실력이 가장 늘었다고 느낀 순간으로 꼽힌 것도 바로 그 둘이었다. ResNet에서 배운 skip connection을 Transformer에서 다시 만나며 이해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의도적으로 만든 불편함이 실제로 성장의 순간이 된 셈이다.

다만 참고 코드나 AI 없이 혼자 구현하는 역량은 끝까지 2점대에 머물렀다. 다섯 항목 중 유일하게 보통에도 미치지 못했다.

세 번의 설문에 모두 응답한 12명의 역량 자기평가 평균 (5점 척도)
학기 초학기 중간학기 말
이론 설명2.173.583.75
독립 구현1.502.502.25
디버깅2.673.923.83
기록·공유3.173.503.67
자기효능감3.673.754.00

배우고 느낀 점

동아리 회장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것을 실제로 만들어 보고, 여러 사람에게 직접 적용해 본 경험은 정말 의미 있었다. 그만큼 어려운 점도 많았다.

첫째, 커리큘럼은 모두가 한 학기 내내 빠짐없이 참여한다는 전제로 짰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빠지는 사람이 생겼다. 개인 일정이 겹치기도 하고, 체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처음의 열정이 식기도 했다. 이를 막으려고 무단결석 1회면 참여를 제한하는 규칙도 세웠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규칙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다음에 한다면 출석 시스템이나 출석을 전담하는 운영진부터 두고 싶다.

둘째, 어려움을 스스로 넘는 데는 생각보다 큰 에너지가 들었다. 설문에서는 낯선 과제도 해낼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이 높게 나왔지만, 실제로는 부딪히며 알아 가기보다 잘 정리된 지식을 받아 가는 쪽을 더 의미 있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다음에 한다면 단계를 더 잘게 쪼개서, 짧은 주기로 작은 성공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셋째, 내가 전담한 시니어 트랙은 사실상 방임에 가까웠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의도였다. 오픈소스 코드를 재현하고 고치는 과정은 누가 대신 도와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내 한계였다. 내 분야는 LLM 에이전트와 HCI인데, 시니어 팀은 모두 강화학습 프로젝트를 골랐다. 막혔을 때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 별로 없었다. 스스로 하게 두는 것과 혼자 두는 것은 다르다는 걸 그때 알았다. 다음에 한다면 교수님이나 외부 멘토를 섭외해, 막혔을 때 기댈 곳을 만들어 두고 싶다.

넷째, 운영진 사이에 동아리가 나아갈 방향이 달랐다. 나는 동아리의 학술적 내실을 다지는 데 힘을 쏟고 싶었고, 다른 운영진은 대외협력에 더 집중하길 원했다. 대외협력도 동아리에 꼭 필요한 일이다. 다만 우선순위를 맞추지 못하다 보니, 회의에서는 서로 제안하고 거절하기를 반복하며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그만큼 에너지도 많이 들었다. 다음에 한다면 학기를 시작하기 전에 동아리가 무엇에 집중할지 운영진끼리 먼저 합의하고 싶다.

마치며

두 학기 동안 동아리를 이끄는 건 개인적으로 큰 도전이었다. 그만큼 힘들었고 많이 지치기도 해서, 지금은 동아리를 그만두었다. 그래도 30명 규모의 조직을 이끌고, 설문으로 부원들의 목소리를 들어 실제로 커리큘럼을 바꿔 본 일은 돈 주고도 사지 못할 경험이었다.

앞으로는 연구실에서 연구에 더 집중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함께 고생한 운영진들과 끝까지 따라와 준 부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